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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 경내 아세요

달 과 해 2014. 12. 27. 18:31

 

조선 호텔(서울) 경내에 있어요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157호
                                        지정일 1967년 07월 15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06 (소공동 87-1)

                                      시대

대한제국

                                             종류/분류

사묘, 제단

                                       크기

면적 8,661㎡  

 

 

 

 

 

 

 

 

석조 대문에서 본 환구우

 

 

 

 

 

 

 

석고

 

 

 

 

 

 

1967715사적 157호로 지정되었다.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가리킨다. 명칭의 한자 표기와 독음을 환구단(圜丘壇)과 원구단(圜丘壇 또는 圓丘壇)으로 혼용하던 것을 2005년 문화재청에서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圜丘壇'으로, 한글 표기는 고종이 제사를 지낸 189710월 당시 독립신문을 따라 '환구단'으로 정하였다.

우리나라의 제천의례(祭天儀禮)는 삼국시대부터 농업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기우제를 국가적으로 거행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제도화된 환구제(圜丘祭),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성종(재위 981997) 때부터라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 제천의례는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하고 억제되었다가세조(재위 14551468) 때 왕권강화를 위해 환구제를 다시 부활시켰으나, 세조 10년에 폐지하였다.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천자가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다시 설치되었다.

지금의 환구단은 1897(고종 34)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옛 남별궁(南別宮) 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이다. 그뒤 단지 내에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1899년에 축조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였으며, 1902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石鼓壇)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석고(石鼓)의 몸체에 부각된 용무늬는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처음 조성된 단지는 1913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철도호텔이 들어서면서 축소되었으며,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경내에 남아 있다.